인터뷰 원본 출처: [인터뷰] 최종구 감독, 자본주의 축소판 편의점의 이질적인 존재 탈북여성 ("련희와 연희" 공식사이트 https://ryunhee.com/2017/11/28/interview-director-choi/)
시나리오를 직접 쓴것으로 알고 있다.
처음에 <련희와 연희> 이야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모티브는 ‘공간’ 이었다. 예산이 극도로 적었고 애초부터 60분 이상의 장편을 찍겠다고 결심했었다. 그러자면 공간이 한정되어야 했다. 그래서 편의점이라는 공간을 떠올렸는데 가장 자본주의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때까지는 편의점 섭외가 얼마나 어려운지 몰랐었다.
련희와 연희는 한자로는 같은 글자를 쓰는 같은 이름이지만 남북이 분단 된 현재는 각각 다르게 발음한다. 이런 이름의 동질성과 차이로 남북의 동질성과 분단된 현실을 상징하게했다.
련희의 반복되는 일상의 장소로 편의점이 등장한다. 십대소녀 연희와 만난곳도 편의점이고, 다양한 인간군상을 만나는 곳도 편의점이 나온다. 특별히 편의점을 지정한 이유라도 있는가?
다시 말하지만 편의점은 극도로 자본주의가 발전한 나라에만 있다. 24시간 돌아가는 편의점, 거기서 12시간 교대로 일하는 노동자, 그래서 같은 물건도 두 배 넘게 비싸게 판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하는 일이 별로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 일을 해보면 한 순간도 쉬지 못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노동착취와 저임금의 대명사 같은 공간이다. 또 탈북자들이 많이 일하기도 한다. 24시간 밝게 빛나고 먹거리와 입을거리 마저 팔고 있기에 집나온 청소년의 의도치 않은 쉼터이기도 하다.
편의점에서 두 달 정도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있었다. 그래서 편의점에서 만날 수 있는 인간군상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었다. 한 달 정도 일하고 단골들의 담배 취향을 파악해 단골손님이 들어 오면 그 손님이 피우는 담배를 척 내놓고는 했다. 손님들 중에는 그런 나를 테스트하기 위해 다른 손님까지 데리고 와서 보여주는 걸 봤다.
련희에게 편의점이란 어떤 공간인가?
북한에서 넘어 온 사람에게는 가장 이질적인 공간이자 밤새도록 혼자 일해야 하는 고독한 공간이다. 말하자면 편의점은 대한민국의 작은 축소판이다. 그러나 련희는 도망치지 않는다. 그 공간에 새로운 빛을 끌어들인다. 스스로의 몸에서 나온 빛으로. 싸워야 할 때는 싸우고, 먼저 손을 내밀 때는 먼저 내민다.
연희는 밝게 웃고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막나가는(?) 것 같은 지점이 있는데,
상처받은 소녀라서 그런 것인가?
청소년기는 사실 일생동안 자존감이 가장 낮은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부모와는 다른 인생을 살고 싶다는 의지는 강렬하지만 청소년의 그런 의지는 어른들의 말 한 마디, 눈길 한 번에 우르르 무너지는 모래성 같은 거다. 자신의 성이 무너질 때 연희가 느끼는 좌절, 바로 그것이 그녀를 ‘막나가는’ 것 처럼 보이게 했을 것이다.
련희가 전형적인 탈북 여성의 모습에서 벗어나서 좋았다. 그동안 너무 억척스럽거나 너무 예쁘다거나. 하는 그런것들. 그런 예상을 빗나가서 좋았다.
음 그러니까 우리와 같은 옷을 입고 우리와 같은 음식을 먹는. 감정이 있는 똑같은 사람이구나 이런걸 느꼈는데. 감독이 생각하는 탈북여성은 어떤가? 실제로 탈북여성을 만나보거나 취재를 한 것인가?
물론 취재를 했고 기본적으로는 ‘같은 사람이다’ 란 생각을 가지고 있다. 다만 내가 그리고 싶은 인물은 남한에 와서 일방적으로 보호받는 그런 캐릭터가 아니라, ‘여기에도 소외 받는 사람들이 있구나. 같이 힘내서 살자.’ 하고 먼저 손을 내미는 새로운 탈북자를 그리고 싶었다.
우리 사회는 급격한 구성원의 변동을 겪고 있다. 북한이탈주민, 조선족, 이주노동자들이 우리 사회에 유입되고 있는데 우리는 그들을 맞이할 준비가 안되어있다고 본다. 특히 매스미디어는 ‘다문화’ 라는 애매한 단어로 다문화정책을 어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탈북자, 조선족, 이주노동자들에게 어마어마한 무언의 폭력을 가하는 주범이다. 특히 조선족동포의 폄하는 영화가 앞장서고 있는데 외국의 기준이면 ‘범죄’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특히 탈북자를 이념전쟁의 최전선으로 내몰아 총알받이로 쓰려는 불순한 의도를 가진 정치 세력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대한민국에 어렵게 안착한 그들이 온전히 자신의 삶을 개인과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살 수 있도록 보살피는게 우리 사회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또 반대급부로 그들에게 새로운 발전의 에너지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여성연대? 여성영화로 보는 분들도 있는데 의도된 것인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원령 공주> 안에 ‘여자의 웃음 소리가 큰 나라가 행복한 나라’ 라는 대사가 있다. 세계 곳곳의 분쟁 지역에서 볼 수 있듯이 여성과 어린이는 여전히 최초의 그리고 최악의 피해자다.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다.
여성인권은 결국은 인류의 인권이다. 이 문제가 진보되지 않는다면 인류는 진화를 멈춘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면에서 <련희와 연희>가 여성영화, 여성연대라고 평가 받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폐지줍는 할머니, 담배사러오는 손님의 캐릭터도 다분히 의도를 가지고 배치한 것이다.
늦깍이 데뷔로 알고 있는데, 그동안 시나리오 많이 썼을 것 같다. 직접 연출을 하니 어떤가? 시나리오만 쓸 때랑 다른가? 영화 찍으면서 느꼈을 소회를 밝혀달라.
데뷔 12년차 작가다.
12년간 애니메이션, 드라마대본, 시나리오 쓰면서 심한 우울증을 겪었다. 많은 작가들이 우울증이 있지만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몸은 아는데 마음이 그걸 인정하지 못하는 거다. 우울증의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나같은 경우엔 수많은 각색을 했음에도 그 작품들의 행방을 모른다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었다.
작품이 엎어지면 당연히 관례적으로 계약된 잔금은 못받는다. 경제적 어려움도 크지만 내가 낳아 시집보낸 작품들이, 내가 키운 작품들의 행방을 모른다는 것은 큰 스트레스였다.
직접 연출을 하면서 정말 딴 사람처럼 생기가 돌아왔다. ‘난 원래 감독이었나?’ 싶을 정도로 신이났다. 하루 두 세시간만 자고도 펄펄 기운이 솟았다. 다시 영화를 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었고 내가 욕하고 씹던 감독들의 입장도 이해하게 되었다. 영화는 정말 감독의 예술이다. 그러나 내 정체성은 여전히 ‘작가’ 다. 감독도 하고 작가도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주연배우의 연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굉장한 흡인력이 있었다. 올해 한국영화가 발견한 여배우로 추천하고 싶다. 섬세한 연기가 인상적이었는데, 감독은 어떻게 여배우를 발견했나?
배우를 캐스팅 전에 가능한 한 오래 관찰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캐스팅 한 후에는 전적으로 그 배우를 믿어 줘야 하기 때문이다. 감독이 배우에게 의혹을 가지고 있으면 배우가 흔들리고, 배우가 흔들리면 그 이후의 모든 일이 힘들어 진다. 일단 계약하면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하고 배우와의 면접과 오디션에 임한다. 그리고 캐스팅의 결과는 오롯이 감독의 책임이기 때문에 더욱 신중해져야했다.
‘내가 이 작품에 당신을 캐스팅할 수도 있어.’ 라는 시기와 입장에서 배우를 만나지 않는다. 특히 그 배우가 주연급이라면 더욱 그렇다. 독립영화라서 가능한 일이겠지만 일상 속에서 배우를 관찰하거나, 다른 연출자와 일하는 모습, 작품속의 배우를 관찰하는 것이 나만의 방법이다.
이미지도 중요하지만 연기력, 협업정신을 본다. 그래서 많은 배우들이 머리 속이나 컴퓨터 폴더 속에 정리 되어있다. 이야기과 캐릭터에 따라 언제든지 꺼낼 수 있다.
이제와 련희와 연희의 캐스팅 과정을 돌이켜보면 정말 막판에 막판까지 감독을 흔들려는 시도(?)들이 많았다. 그 과정에서 실제로 흔들리기도 했고 지치기도 했지만 결과론적으로 두 주연 배우는 나의 의지대로 됐고 100% 만족한다. 처음에 캐스팅을 반대했던 사람들로부터 ‘네가 옳았다’고 인정받았고, 그런 과정에서 얻어낸 최고의 성과는 바로 ‘연출자’로의 자신감이었다.
대학로 1인극을 관람하고 매료 된 이상희 배우는 20년 넘게 연극으로 단련된 노련한 배우다. 놀랍게도 련희와 연희가 그의 첫 스크린 작품인데도 때로는 감독인 나를 이끌었다. 개인적으로 ‘련희’ 역은 출산과 육아의 경험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상희 배우는 마침 그 조건까지 충족하고 있었다. 나중에 동료들에게도 그를 캐스팅 한 것은 ‘신의 한수’ 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나에게는 배우를 넘어서 ‘은인’이다.
가출소녀이자 자존심쎈 ‘연희’역의 윤은지 배우는 DMC첨단산업센터내의 ‘프로필 상자’ 에서 발견해서 개인 면접과 오디션이라는 3단계 검증을 통과한 케이스다. (웃음) 두 상자쯤 되는 사진 속에서 유난히 눈에 들어와서 기억 속에 있었는데 사진마다 이미지가 많이 달라서 그랬던 것 같다. 순수하기도 하고 반항적인 이미지를 다 가지고 있어야 했다.
실제로 만나보니 사진보다 더 예쁘긴 했지만 낯을 많이 가리고 경계심이 가득 차 있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자신은 아니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언제든지 자리를 박차고 도망칠 태세였다.
그런데 보자마자 나는 이 친구가 마음에 들었다. ‘이 친구 머리를 염색시켜야겠다.’ 는 구체적인 생각까지 들더라. 그래서 오디션을 제안했다. 오디션에서도 잘했고 신체적 조건도 배역이랑 잘 맞았다. 북한 출신 ‘련희’와 나란히 섰을 때 련희의 키가 작아 보여야해서 ‘연희’ 역은 키가 커야 했다. 윤은지 배우에 일말의 의구심을 가지고 있던 지인들도 영화를 보고나서는 다들 엄지를 세워서 우쭐해 질 수 있었다.
끝으로 관객에게 한 마디
그냥 영화다. 배우가 있고 스텝이 있고 감독이 있지만 좀 작은…아니 많이 작은 영화다. 그렇다고 애정을 구걸하진 않겠다. 상업영화에 찌든 감성을 정화하고 싶다면 한번 발품팔아 보시고 정당하게 평가해주십사하고 부탁드리고싶다.
글_audrey park 무비스크램블 에디터 (audrey@moviescramb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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