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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드라마/시나리오 읽어주는 여자

[시나리오 읽어주는 여자] '우리 형', 싫은 건 싫은 기고·그래도 가족이다 아이가


‘우리 형’ 본 사람은 알겠지만, 재미없는 영화다. 시나리오 역시 완성도는 있지만 재미없다. 일부 네티즌의 평대로 추석에 가족과 모여앉아 보면 딱 좋을 영화다. 

‘우리 형’은 무엇 하나 튀는 게 없다. 마지막에 뜬금없이 누군가 죽는 것을 제외하고는 이상한 점이 한 가지도 없다. TV 드라마를 보듯 카메라는 무덤덤하게 사람을 보여주고 있어 스토리며 대사며 연기며 심지어 세트까지 모두 무덤덤하다.

그래도 이 영화는 소위 진심이라는 게 느껴졌다. 그것이 감동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현실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데 느낄 수 있는 가족에 대한 애증을 잘 나타내지 않았나 싶다.



아쉬움 둘


신선하지 않다는 약점은 이미 한 차례 지나간 영화에 대한 예의로 살짝 눈감아 주기로 했다. 그 대신 내용상 참으로 아쉬운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우리 형’에는 형이 없다.


주인공 종현은 형에 대해 질투이던 경멸이든 끊임없이 감정적으로 관심을 나타내는 데 영화는 정작 형에 대해서는 어떤 감정도 없다. 형이란 존재외에는 그 관계를 떠나서는 아무 인간적인 관심이 없어 보인다. 

아래 씬53에서 화가 나 있는 형에게 동생이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평소처럼 대하다가 긴장감이 발생한다. 종현의 ‘야, 버버리, 니 주제 파악 해라’는 한마디는 형의 장애를 비꼰 말로 충분히 어떤 리액션이 있어야 하는데, 형은 그냥 자리를 피할 뿐이다. 종현 입장에서는 도대체 형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하나의 타인으로 냉정한 시선을 보낸다.



감정적인 영화이지만 형에 대한 거리감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53.INT.방 안-NIGHT


책상 위에 펼쳐진 노트. 형이 몇 장을 넘겨 본다. 미령의 얼굴이 그려 져 있는 그림이 보인다. 몇 장을 넘겨 보다 멈추는 손. 노트에 찍어진 흔적이 보인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형.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고 눈가에 힘이 들어 가더니 갑자기 잡아 째기 시작한다. 마치 이성을 잃어 버린 듯 잡아 째기 시작한다. 찢어 지는 노트와 형의 얼굴이 반복적으로 보여지는데 이때 방문이 열리며 종현이 들어온다. 형이 행동을 멈추는데 시선은 찢어진 노트에 고정되어 있다. 종현이 찢어진 노트를 바라 보더니 방바닥에 앉으며

종현 

엄마는 어디 갔노? 


형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종현, 발로 양말을 벗기며


      사람이 말을 했으면 대답을 해야 할 꺼 아이가? 


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종현 양말을 발가락으로 집어 구석으로 던지며


     야, 챠탈레 부인, 라면 좀 끓이라.


형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니 뭐하노 지금? 라면 끓이라는 말 안 들리나? 


형  

니가 해 먹어라.


종현 

뭐어? 니 지금 뭐라 켔노?


형  

니가 해 먹으라고 했다. 와? 


종현 (일어나 앉으며)

하, 씨바·니 지금 내한테 게기는 기가? 


형  

니는 내 한테 안 게기나? 


종현(일어서며)  

하, 이기· 야, 니 죽을래? 라면 안 끓이나? 


형 (일어서며)

니가 해 먹어라.


종현 

끓이라?


형    

니가 해라.


종현  

끓이라?


형    

니가 해라. (어색하게)씨발·


종현(형의 멱살을 잡으며)

뭐어? 이기 간이 쳐 부었나? 맞고 싶나? 빨리 안 차리 올래?


(노려보며)

 니가해라.


이때 초인 종 벨소리가 들려 온다. 그대로 멈춰선 형제. 벨 소리가 한동안 들려오고 형이 종현의 멱살을 손으로 힘줘 풀더니 방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종현   

야,버버리, 니 주제 파악 해라. 


종현도 자신이 한 말에 놀란 눈치다. 멈칫하고 멈추는 형. 잠시 정적. 형이 크게 소리 내어 문을 닫고 나간다. 종현이 까깝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종현   

하, 씨바·


심지어는 시나리오에서 형은 이름도 없다. 그냥 ‘형’으로 표시된다. 단지 가끔 어머니나 선생님만이 ‘성현’이라는 이름을 불러준다. 



둘째, 가족이란 의미에 대한 해석이 아쉽다. 


먼저 작가의 가족의 대한 한 마디 문구가 아래 씬56에 있다. 


56.EXT.미령의 동네-NIGHT 

골목 양 옆으로 가로수들이 깔끔하게 정비 되어 있는 부자 동네다. 정리 된 가로수 사이로 놓여진 벤치에 앉아 있는 종현과 미령. 미령이 종현을 바라보는 시선이라면 종현의 시선은 반대편 벽 어딘가에 고정되어 있다.


종현   

동네 좋다. 좀 사네. (잠시정적) 느그 오빠야 깡패라메.


미령   

깡패? (한 호흡 쉬고) 듣고 보이 기분 나쁘네·

         니 그 말 할라고 보자 그랬나?


종현  

오빠라고 편들기는· 니 느그 오빠야 싫다메? 


미령

싫은 건 싫은 기고·그래도 가족이다 아이가? 


‘싫더라도 가족은 가족이다’ 라는 것은 ‘가족이란 존재를 무조건적으로 긍정해야 된다’라는 의미와 ‘가족 구성원은 가족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전자는 가족의 순기능을 강조한 것으로 필자도 아름다운 전통이자 소중히 여야할 가치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후자에 들어서, 형은 형이기 전에 인간이며, 어머니도 어머니이기 전에 여성이고 사람이라는 점을 다시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어찌보면 종현이 형에게 범하는 모든 무례는 형이니까 이해해 주리라는 전제하에서 자행되고 있다. 그 지방의 특성이기도 하겠지만 형이고 엄마고 다 ‘니’라는 호칭을 부르는데 극중에서는 그것이 아주 자연스럽다. 


33.EXT.학교 운동장-DAY


운동장을 가로 질러 걸어 가는 어머니와 형제. 어머니가 앞서 걸어 가는데 걸음 거리에 서릿발이 날린다. 그 뒤로 거리를 두고 따라 오는 형제. 


종현(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엄마·미안하다.


어머니와의 거리 좀 더 멀어진다. 종현 좀 더 큰 소리로


미안하다~


형은 멈춰 서 종현을 바라보고 어머니는 못 들은 척 걸어간다. 종현 빽 소리친다.


미안하다 안 하나!


형이 어머니를 바라본다. 어머니 걸음을 멈추더니 뒤 돌아 보며


어머니

뭐하노? 빨리 안 오고·


형이 종현이의 손을 끌자 종현이 형의 손을 뿌리치며 어머니에게로 간다. 형이 뒤 따라간다. 어머니 멈춰 서서 두 아들을 바라보며


성현아, 종현아!(한 호흡 쉬고) 단디 들어라. 다음에도 누가 느그 둘 

중에 한 사람이라도 괴롭히면은 같이 때리주라. 그기 형제다. 알긋나?


형제의 표정이 보이고 이어 텅 빈 운동장을 걸어 가는 모자.


가족이란 이데올로기의 강화자로 여기서는 어머니가 등장한다. ‘그기 형제다’라고 담담하게 내뱉는 어머니는 이후로도 깜짝 놀랄 만할 말들을 한다.

씬 85에서는 ‘느그들 지금 아버지 없다는 거 표 내는 기가 뭐고? 라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


씬 90에서는 ‘아무래도 느그 동생은 니 아버지를 닮은갑다. 나도 참 못된 년이지 남편 없이 새끼 둘 나아 길러보이 그렇더라. 하나는 남편 같고 또 하나는 자식 같은 기라. 종현이는 의지가 되고 니는 자꾸 신경이 쓰이고 그게 섭섭 했는갑다.'... 



‘하나는 남편 같고 또 하나는 자식 같다’라는 말은 분명히 극중에서는 감동적인 대사들이었다. 가슴에 묵직한 돌을 얹은 것처럼 호흡을 천천히 하게 한 말들이었지만 반대로 가족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좀 무섭기도 하다.



씨앗 하나


필자는 이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나름대로 느끼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재미있는 얘기, 기발한 상상, 먹어주는 이야기만 찾아다니던 것에 대한 후회였다. 

이 재미없는 시나리오를 보면서 내가 하고 있는 짓이 참 부끄러웠다. 어떻게든 데뷔해 볼려고 하다보니 이미 작품에는 ‘진심’이 빠진지 오래다.


농부는 굶어 죽더라도 다음 해 뿌릴 씨앗은 먹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다. 이 시나리오를 보면서 작가들이 가슴에 품고 죽을 씨앗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우선 필자는 그 씨앗을 ‘진심’이라고 나름대로 답을 내렸다.

영화에 있어서 누구도 하지 않을 고민을 적어도 작가 한명은 해야 한다. 요즘 세상에 웬 진심인가 싶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그 진심이 진부함을 탈피하도록 노력해야함은 물론이다.


작가주의 영화에서 사실 그 작가란 것은 ‘감독’을 말한다. 사실 작가도 못되는 시나리오 쓰는 사람들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지 모르겠지만, 존재하는 한 ‘진심’을 지켰으면 좋겠다.


물론 요즘은 감독들이 전부 시나리오도 쓴다. 이 작품도 안권태 감독이 직접 각본을 맡은 것이다. 지금처럼 보조적인 수단으로 감독이 하잔대로 하고, 기획영화라고 아이템 회의대로 쓰다가는 언젠가는 시나리오만 쓰는 집단은 반드시 없어질 것이다. 그날이 빨리 오길 바란다. 그래도 없어지기 전까지 최소한의 ‘진심’을 잃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대필 작가가 아니니까... 그것마저 포기하면 안된다. 


** 이글은 제가 온라인 영화비평 네오이마주 [시나리오 읽어주는 여자] 칼럼에 2006년1월에 게재한 바 있습니다. **